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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죄형법정주의란?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는 범죄와 형벌은 반드시 법률에 의해서 정하여져야 한다는 형법의 기본 원칙이다. 이는 자의적인 처벌을 막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헌법적 원칙으로서, 현대 법치국가에서 형법의 대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2조 제1항 후문은 “형사피의자 또는 피고인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되지 아니한다”고 규정
형법 제1조 제1항은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 당시의 법률에 의한다”고 하여 죄형법정주의를 명문화하고 있다.
이 원칙은 다시 다음과 같은 4가지 하위 원칙으로 구체화된다:
- 성문법률주의
- 명확성의 원칙
- 소급효 금지의 원칙
- 유추해석 금지의 원칙
그중 이번 글에서 다루는 성문법률주의는 죄형법정주의의 출발점이자 핵심이 되는 원칙이다.
<쉽게 생각합시다>
죄 : 범죄
형 : 형벌
법 : 법률
정 : 정해라
주의
즉, "범죄와 형벌은 법률로 (미리) 정해라"는 뜻2. 성문법률주의의 개념과 의미
1) 개념 정리
성문법률주의란, 범죄와 형벌은 반드시 성문으로 된 형식적 의미의 법률에 의해서만 정할 수 있다는 원칙이다. 이는 입법기관인 국회가 제정한 형식적 법률만이 범죄와 형벌의 근거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원칙은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행정명령, 관습, 판례 등의 비성문법에 근거한 처벌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다시 말해, 국민이 어떤 행위가 처벌 대상인지 미리 알 수 있어야 하므로, 반드시 법률이라는 형식으로 공표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에 방점이 찍힌다.
2) 헌법적 근거
- 헌법 제12조 제1항: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되지 아니한다.”
- 형법 제1조 제1항: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 당시의 법률에 의한다.”
위 조항들은 성문법률주의의 헌법적 근거로 작용하며, 형벌권이 입법권을 통해서만 행사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한다.
<쉽게 생각합시다>
성문 = 成(이룰 성) 文(글월 문) = 문자로 기록되고 문서 등의 형식으로 기록된
만약 국회가 만든 형법에 의하지 아니하고 재판하고 처벌할 수 있다면 없는 범죄도 만들어 내서 처벌할 수 있고, 괘씸죄나 감정적으로 형량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음
형벌이 수단이 형사(소송)에서 특히 미리 법률로 범죄와 형벌이 만들어져 있어야 하는 엄격함이 필요함.
죄형법정주의, 성문법률주의가 없는 세상을 이해하기 쉽게 극단적으로 가정해 보자.
예컨대, 길가다 똥을 밟은 사람을 더럽다는 죄로 징역 1년에 처한다면 말도 안 되지만, 피고인이 재판관과 원수라면?
같은 절도를 한 두 사람을 한명은 재판관과 원수라고 징역 10년에 처한다는 판결을 하고, 다른 한명은 재판관의 친척이라고 무죄라는 판결을 하였다면?3. 성문법률주의의 적용 범위
성문법률주의는 범죄의 성립 요건과 형벌의 종류 및 정도에 모두 적용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법률 외의 규범에 근거한 처벌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1) 관습법에 의한 처벌 금지
형사처벌의 근거로는 어떤 경우에도 관습법이 될 수 없다. 이는 아무리 오랜 시간 형성된 사회규범이라 하더라도 형벌을 정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2) 행정규칙 및 내부 명령에 의한 처벌 금지
예컨대 대통령령, 부령, 고시, 지침, 훈령 등은 행정조직 내에서의 운영기준에 불과하며, 국민에 대한 형벌의 근거로 사용될 수 없다.3) 판례법에 의한 처벌 금지
판례는 법 해석의 지침일 뿐이며, 형벌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 다만 판례가 기존 법률을 해석·적용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준은 된다.<쉽게 생각합시다>
성문법률주의에서의 법률은 원칙적으로 국민이 뽑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서 만든 법률을 말함.
먼저 삼권분립에 의해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는 입법기관인 국회, 집행기관인 행정부, 재판기관인 법원 이렇게 삼권이 분립되어 있다. 하지만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법률을 만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법의 공백이 발생할 수 있고 이 공백을 빠르게 메우기 위해서 각 수장의 명령이나 규칙 등이 필요할 수 있다.
예컨대,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던 시대에는 온라인상의 규제 같은 법들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이 발달하고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는데 법은 논의해서 상정하고 이를 제정하는데 절차들을 밟아 공포하고 시행하는데만 최소 몇개월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온라인에서는 전에 없던 것들이 빠르게 새로 만들어지는데 이에 관한 것들에 대한 통제 등을 법률로만 규정하여야 한다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법이 만들어지는 동안 폐해가 많이 발생했을 것이고 법이 만들어질 때는 이미 많은 피해나 피해자들이 생기고 난 뒤일 것이다. 항상 소 잃고 외양간 고쳐야 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법의 집행기관인 행정부가 다른 형법을 만들어서 집행한다고 가정해보자. 대통령이 국민의 대표라고 할 수는 있겠다. 국민이 직접 뽑았기 때문에. 그러나 그외 총리나 장관들은 어떠한가? 또한 행정부가 직접 법률도 만들고 집행도 한다면 삼권분립의 의미가 없어진다. 그리고 만드는 절차도 훨씬 쉽기 때문에 대통령이나 총리, 법무부장관 등이 마구잡이식으로 만들어 집행한다면? 이번 정권 때는 살인자는 사형! 다음 정권 때는 이를 폐지하면서 사형은 없애고 무기징역으로 대체한다면? 법적 안정성도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이번엔 법원에서 형법 같은 것을 만들고 재판한다고 생각해보자. 일단 법관은 국민이 직접 뽑은 자들이 아니어서 국민의 대표라고 보기에 무리가 있다. 또한 재판기관이 법까지 만들 수 있다면 역시 삼권분립이 심각하게 훼손된다. 내가 재판할 법률은 내가 만든다? 특히나 범죄와 형벌을 가하는 형법 같은 법이라면? 조선시대 사또나 다름 없게 된다. "내가 알아서 재판할게"와 다를바 없다. 역시나 제정 절차가 훨씬 쉽다.
둘째, 형법의 존재이유와 정당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형법은 사람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을 수단으로 하는 법이다. 범죄의 성립을 규정하고, 형벌의 종류와 범위를 만드는 형법은 정말 엄격하게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범죄를 규정하고 형벌을 가할 수 있는 법은 반드시 국민의 합의가 필요하고, 절차상으로도 엄격하게 만들어져야 하는데 입법기관이 아닌 집행기관인 행정부나 재판기관인 법원에서 (함부로 그리고 상대적으로 더 쉽게)만들어 쓴다는 것이 정당한 것일까?
다른 법률들과 다르게 고통을 가하는 형법의 경우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엄격하게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엄격하게 봐야 한다고만 하는게 능사는 아니다. 위에서 기술했다시피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모든 범죄와 형벌에 관한 것을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의해서만 해결해야 한다면 심각한 법적 공백이 있을 수도 있다. 예컨대, 해킹, 사이버범죄, 보이스피싱, 음란물과 도박 등 빠르게 새로 만들어지는 온라인 범죄 같은 것들은 법이 만들어지는 최소 몇 개월 사이에 심각한 피해나 피해자를 양성할 수 있다. 여기서 법규명령으로 빠르게 규정할 필요성이 나타났다. 즉, 현대사회에서는 원칙적으로 국회에서 만든 법률에 의하여야 하나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 위임으로 명령에 의해 규정하는 예외를 허용하고 있다. 아래 4번 항목)
참고로 대통령령에도 국민의 권리의무와 관련된 법규명령과 단순 내부 운영 규칙 등을 정하는 행정규칙으로 나눌 수 있는데, 어떤 것이 법규명령이고 어떤 것이 행정규칙인지에 대해서는 여기서 논하는 범위를 크게 벗어나는 전문적 영역이기 때문에 패스한다.4. 예외적 인정: 위임입법의 한계
물론 성문법률주의가 절대적인 원칙은 아니다. 현대 입법에서는 기술적인 내용이나 세부 규율 사항은 위임입법의 형태로 대통령령이나 부령 등에 위탁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 역시 다음 조건을 충족해야만 위헌이 아니다.
- 형벌에 관한 위임은 구체적 범위를 한정하여야 한다.
- 수권 법률에 기본사항이 명시되어 있어야 한다.
- 포괄적인 백지위임은 허용되지 않는다.
5. 관련 판례
대법원 2006도7778 (이른바 ‘형벌의 위임 한계’ 사건)
사건 개요: 어떤 법령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위반한 자는 처벌한다"는 형식으로 위임을 하였고, 실제 대통령령에서 구체적인 금지행위를 규정했다. 피고인은 대통령령 위반으로 기소되었고, 이에 대해 처벌의 근거가 적법한지를 다툰 사건이다.
판결 요지: 대법원은 “형벌에 관한 위임은 구체적 범위를 정하여 명확히 하여야 하며, 이를 행정입법에 백지위임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형벌에 관한 위임은 법률의 구체성과 명확성을 갖추지 않으면 위헌이라는 입장을 확립하였다.
의의: 성문법률주의는 단지 형식적인 법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처벌 범위와 행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판례다.
<쉽게 생각합시다>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시대는 빠르게 변하는데 모든 사항을 법으로만 만들기에는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 국회가 만든 법률이 아닌 법규명령으로도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사항을 만들 필요성이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법에서 어떤 사항을 위임할 것인지, 어디까지 위임하는 것인지를 대략적이라도 알 수 있게 위임하여야지 아예 통채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이라고 포괄적으로 위임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이 뭔지 그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예)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 (X) ---> "보이스피싱에 대해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 (O)
'대통령령에서 보이스피싱에 대해서 규정하겠구나'라고 예측이 가능함
아래 판례도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기획재정부령으로 정하는 규정"은 일반인이 어떤 사항을 기획재정부령으로 정할 것인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인 법률로 판단했다.헌재 2001헌바70 (관세법 사건)
사건 개요: 관세법은 “기획재정부령으로 정하는 규정을 위반한 자는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었고, 실제로 기재부령을 위반한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이 이루어졌다.
헌법재판소 결정 요지: 법률이 형벌의 내용과 요건을 명확히 규정하지 아니하고, 하위 명령에 포괄적으로 위임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의의: 하위법령이 아니라 국회의 법률 자체에 명확한 처벌 조항이 있어야 함을 강조한 판례로, 성문법률주의의 실질적 보장을 확인한 사례다.
대법원 2012도13748 (‘관행’에 의한 공무원 처벌 사건)
사건 개요: 피고인이 일정한 행위에 대해 조직 내 관행을 따랐다고 주장했음에도, 해당 행위가 실질적 위법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징계나 처벌을 받은 사안.
판결 요지: 관행은 형벌의 근거가 될 수 없으며, 비록 해당 관행이 행정조직 내에서 암묵적으로 수용되어 왔다 해도, 명시적인 법률 근거가 없다면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함.
의의: 성문법률주의는 자의적 또는 암묵적인 규범으로부터의 형벌 부과를 배제하는 원칙임을 명확히 한 판례다.
6. 정리 및 결론
성문법률주의는 형사법 영역에서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고, 자의적인 국가 형벌권 행사를 방지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방파제 역할을 한다. 모든 처벌은 오직 ‘국회에서 제정한 형식적 법률’에 근거해야 하며, 이에 따른 구체적이고 명확한 규정 없이는 어떤 행위도 범죄로 삼을 수 없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판례를 통해 위임입법의 한계를 명확히 설정하고, 관습이나 행정규칙 등 비성문법에 의한 처벌을 지속적으로 제한해 왔다. 이런 흐름은 성문법률주의가 단순한 형식적 원칙을 넘어, 국민의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헌법적 원칙임을 시사한다.
결국 성문법률주의는 법치주의의 핵심이며, 국민 개개인이 법률을 통해 스스로의 권리와 책임을 예측하고 계획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토대라 할 수 있다.
* 글쓴이는 강의를 전문으로 누구를 가르치는 강사가 아닌 별 볼일 없는 법학 학사입니다.
법을 모르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형법을 쉽게 알 수 있게 하고자 쓴 글이며, 수험 등의 전문적인 목적으로는 맞지 않는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 법 개정이나 판례 변경 등에 의해 글을 쓴 시점에 바뀐 내용이나 맞지 않은 내용이 있을 수 있는 점 참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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